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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작은 이들의 것
작성일 : 2014.03.19   조회수 : 797

바다에도 길이 있습니다.

 

같은 물이 라고 해서 배가 아무렇게나 다니지 않습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안전한 길을 알게 되고 그 길로 배가 다니는 것입니다.

 

물 밑에 있는 물고기도 그렇습니다. 같은 물이라고 해서 아무데서나 물고기가 있는 것이 아니고 물고기가 좋아하는 환경이 있습니다. 어초도 많고 바위도 듬성듬성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물길과 그곳 환경을 아는 경험 많은 어부가 고기를 많이 잡습니다. 그래서 낚시 배를 고를 때 그 지역에서 경험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갈릴레아 호수를 자기 손바닥 보듯이 쫙 끼고 있는 베드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둘째가라하면 서러운 어부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베드로의 자손심이 완전히 뭉개지는 날입니다.

 

베드로와 그 형제들이 오늘 역시 늘 하던 대로 고기를 잡습니다.

수십 년의 경험으로 비추어 당연히 고기가 있을 그곳에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습니다. 물길을 훤히 알고 있는 베드로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분명히 잡혀야 되는데 한 마리도 못 잡습니다. 밤을 새워 그물을 끌었지만 힘만 다 패이고 잡지 못했습니다.

 

어부로서 가장 당혹스러운 경험입니다. 새벽에 이르러 결국 포기를 하고 이제 빈 배로 집으로 돌아가려합니다. 기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때 고기라고는 한 번도 잡아 본 적이 없어 보이는 청년이 와서는 더 깊은 데로 나가서 그물을 놓으라고 합니다. 아무리 사람들한테 칭송받는 랍비라고 하지만 베드로에게는 더 자존심상하는 주문입니다. 속으로 이렇게 투덜거렸을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 그래도 이 바닥은 내가 평생 밥 벌어 먹어온 내 전공 지역입니다. 어부생활을 단 하루도 해보지 않으신 예수님 당신께서 지시하신 그곳은 고기라고는 한 마리 없는 구역입니다. 해보았자 헛수고입니다.” 라고.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그렇게 말씀을 못 드리고 겨우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말에서 베드로의 위대성이 나타납니다.

 

“저는 한평생을 어부생활을 해 온 베테랑 입니다. 그곳은 고기가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람이시니 순명으로 스승님 말씀대로 그곳에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기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가득 잡힌 것입니다.

베드로의 반응은 즉각적입니다. 자기의 속마음에 대한 반성을 하며 바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이제 스승님이라 부르지 않고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가 주십시오.”

 

베드로의 가장 순수한 기도가 나옵니다.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하느님이 누구 인지 알면 겸손해집니다. 순수한 기도가 나옵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키 1m 80cm 되는 사람이 “저는 키가 1m 60cm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겸손이 아니고

 

겸손의 정의는 하느님 앞에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너무 똑똑해서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계산을 잘해서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아서 하느님을 극적으로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항상 앞서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야 하느님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내가 죽지 않기 때문에 깊은 데로 가라는 하느님의 소리는 그냥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소리로 들릴 뿐입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너무도 단순한 것입니다. 이해되든 안 되든 순종하는 것. 그것이면 그물에 가득 잡히는 고기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부생활을 단 하루도 해 보지 않으신 분입니다. 베드로는 평생을 고기만 잡아 온 어부입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신앙생활의 전형적인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 순종과 순수함이 바로 교회의 반석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대리자가 되었습니다.

지상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상 여정을 이분과 함께 합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순종합니까?

 

우리는 교회의 교도권에 대해서 얼마나 존경과 순종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교황님께서 교회교도권의 가르침으로 인공피임을 단죄하면서 이것을 정당화하면 성의 타락 즉 가정의 파괴, 이혼, 성의 상품화로 성매매와 낙태가 오히려 많아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성은 극도로 문란해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라 자처하는 신학자들 윤리학자들은 교황님이 아무리 결혼을 안 한다고 결혼에 대해서 혼인에 대해서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소리를 한다고 신자들을 선동하더니 이제 서야 교황님께서 경고한 대로 되자 꽁무니를 빼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교회의 가르침에(교황문헌- 회칙, 교서, 권고 등등)집중할 것을 호소합니다.

 

한 예로

교황요한바오로 2세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를 반포하시고 잘못 나가고 있는 미사전례를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흥미나 오락이 되고 있는 미사전례를 오감을 만족시키는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성과 희생이 잔치가 되는 십자가상의 희생제사 제사로 바로 잡아주셨습니다. 잔치의 개념을 세상에서 말하는 먹고 마시고 두드리는 감각적인 차원이 아니라 회개의 결과로서 하느님 체험의 영성적 결과라는 것입니다.

 

또한 “동정마리아의 묵주기도”라는 교서를 통해서

종교무분별주의 영향으로, 종교일치운동의 영향으로 발생된 잘못된 기도방식에서 오는 피해를 막도록 가장 훌륭한 기도, 가장 완벽한 기도를 제시하였습니다. 묵주기도는 이 세상 병의 가장 강력한 치유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전문가인 사람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무슨 상관입니까? 언제나 그렇듯이 하느님 나라는 작고 겸손한 이들을 통해 전파되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살다보면 나의 무능으로 인해 깊이 절망의 위기에 떨어질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포기 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바로 주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임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베드로가 그날 고기를 잘 잡았다면 주님을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신앙은 끊임없는 순명의 연속입니다.

순종은 믿음을 성장시키고 믿음을 완성시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내 뜻대로 사는 것은 우상숭배의 길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고 나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체험은 언제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사람의 것입니다. 계산할 줄 모르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지금 손해 보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안심하십시오.

주님 뜻 안에 있습니다.

작은이들은 이미 그것을 체험하고 있고 충분히 누리고 있습니다.

작은이들이여! 우리는 더욱 더 순종합시다.

우리는 더욱 우리의 무능을 즐기며 주님의 능력에 감사합시다.

 

“주님 제게서 떠나 주십시오.”

 

그러나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어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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