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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섬

소록도에는 선창이 두 군데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직원전용과 환우전용. 제비선창은 후자를 위한 부두였습니다.

1984년 5월, 교황 요한바오로2세의 방문으로 이름 없던 소록도가 갑자기 세계 매스컴의 중심으로 떠올랐을 때입니다.
미국 NBC는 한센인에 대한 차별 증거로서 이 부두를 미국 전역에 보도했고, 이 소식을 들은 병원장은 제비선창의 폐쇄를 결정합니다. 별거 아닌 듯 보이는 이 사건은 엄청난 정신사적 변화입니다.
같은 배, 같은 부두! 이는 평등과 형제애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의 방문으로 차별과 소외의 섬은 평등과 진주 같은 소중한 섬으로 바뀌었습니다.

1961년 부임한 조창원 병원장은 직원자녀와 미감아의 분리 수업을 없애고 단종수술을 폐지하는 등 환자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시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까리따스의 가타리나 수녀님이 “벨라뎃다와 루르드”라는 책을 조 병원장에게 전해줍니다.
조 병원장은 그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아 환자들에게 예수님의 구원과 성모님의 전구의 은총을 받게 해주기 위한 마음이 크게 일어났고, 그 장소로 노동착취의 상징인 벽돌공장을 선택했습니다. 폭파한 그 자리에 십자고상과 성모동산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관리를 가톨릭 신자에게 맡깁니다. 그 당시 5분의 4가 개신교였고 천주교를 박해하던 소록도의 분위기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였습니다.

신자들은 그 곳을 철저히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형상화한 정원으로 만들었습니다.

1938년 수호원장시절 탈출한 원생을 효과적으로 잡기위해, 추운 겨울 모든 원생을 동원하여 20일 만에 닦은 길이 있습니다.
암석이 많았던 이곳은 추위에 험한 공사를 감행하여 동상으로 또 한 번 손발이 잘린 환자들의 피고름과 피눈물로 이루어진 길입니다.
그리고 이 길에는 나병으로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결핵으로 같은 나병 이웃에게 또 다시 강제로 버림받은 사람들이 수용된 건물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 어느 신부님과 수녀님이 ‘치유의 길’로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상처가 아무리 크다 하여도 이 분들을 만나면 위로받게 됩니다. 이 분들이 인생의 맨 밑바닥에서 고통을 먼저 당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사가 멀찌감치 앉아 환자에게 자신의 상처를 직접 찔러보라며 진료를 하던 시절,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여인은 환자의
상처를 맨손으로 직접 만지고 냄새를 맡으며 진료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43년을 봉사하고는 새벽길에 아무도 몰래 말없이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소록도의 집, 녹동도 아닌 광주에 도착해서야 부쳤습니다.

한국에서 같이 일하는 외국 친구들에게 가끔 저희가 충고해주는 말이 있는데 그곳에서 제대로 일할 수가 없고 자신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줄때는 본국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편지를 보는 당신에게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우리는 부족한 외국인으로써 큰사랑과 존경을 받아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이곳에서 같이 지내면서 저희에 부족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을 이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여러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큽니다. 그 큰마음에 우리가 보답을 할 수 없어 하느님께서 우리대신 감사해 주실 겁니다.
- 편지 中 -


소록도에 계셨던 신부님이 환우신자들에게 한 강론 중 일부입니다.

“지금 밖에서 눈으로 짓는 죄 때문에 여러분의 눈썹이 빠졌고, 지금 밖에서 손으로 짓는 죄 때문에 여러분의 손이 오그라들었습니다. 밖에서 죄짓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속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천상교회의 건설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 1, 24)

당신의 고통과 그 인내함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당신입니다.